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비명을 지르는 듯한 인물의 모습으로 워낙 유명해서,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패러디 이미지로 접해봤을 그림이에요. 그런데 이 그림이 실제로는 화가 자신이 겪은 매우 개인적인 불안의 순간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절규가 탄생한 배경과 이 그림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릴게요.

해질녘 산책길에서 느낀 불안, 그림이 되다
뭉크는 1892년 1월, 자신의 일기에 이 그림의 모티프가 된 순간을 직접 기록해두었습니다. 그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해가 질 무렵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극심한 피로감과 불안을 느꼈다고 적었어요. 함께 걷던 친구들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지만, 뭉크 자신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자연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거대한 비명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고 회상합니다.
이 개인적이고도 강렬한 경험은 이후 뭉크의 손을 거쳐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되었습니다. 그림 속 인물이 정작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르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연 속에 가득한 비명으로부터 귀를 막으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즉 이 작품은 인물이 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밀려오는 불안과 공포를 한 인간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순간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붉게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인물의 일그러진 형상은 모두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내면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해 표현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런 화풍은 이후 표현주의라는 미술 사조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게 됩니다.
같은 제목, 다른 얼굴을 한 여러 점의 절규
많은 사람들이 절규를 단 하나의 그림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뭉크는 1893년부터 1910년 사이에 걸쳐 같은 주제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작업했습니다. 유화로 그려진 작품이 두 점,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진 작품이 한 점, 파스텔화로 그려진 작품이 두 점 있으며, 이 외에도 1895년에 제작된 석판화 버전과 여러 판화 작품들이 존재합니다. 같은 구도와 같은 주제를 이렇게 여러 매체와 기법으로 반복해서 다뤘다는 사실 자체가, 뭉크에게 이 이미지가 단순한 한 번의 영감을 넘어 평생에 걸쳐 붙들고 있던 화두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여러 버전들은 현재 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소장되어 있습니다. 1893년작 유화는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1910년작 유화와 파스텔화 등은 오슬로의 뭉크 박물관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고, 파스텔화 한 점은 한때 경매를 통해 개인 소장가의 손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여러 점의 절규가 이렇게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에게 나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그만큼 오랫동안 폭넓게 사랑받아 왔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1994년과 2004년, 두 번의 도난과 극적인 회수
절규는 작품성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수난사로도 유명합니다. 1994년에는 네 명의 도둑이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유화 버전을 훔쳐 달아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다행히 약 3개월 만에 작품은 큰 손상 없이 회수되었습니다. 그런데 꼭 10년 뒤인 2004년, 이번에는 무장한 강도 세 명이 뭉크 박물관에 침입해 절규와 함께 뭉크의 또 다른 대표작인 마돈나까지 함께 훔쳐 가는 훨씬 대담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 사건 당시에는 두 작품 모두 상당 기간 행방이 묘연했고, 2006년이 되어서야 다소 손상된 상태로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 차례나 도난을 당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불안과 공포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이토록 강렬하고 보편적인 이미지로 완성해낸 덕분에, 절규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광고, 영화, 만화 등에서 이 그림의 구도가 패러디되고 있는데, 그만큼 뭉크가 130년도 더 전에 포착한 그 감정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